5일차 5월13일(金), 오전.
'아드리아해의 보석', '지구상의 낙원'이라 불리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
크로아티아 스플릿트에서『두브로브니크』로 이동 [ 약 3시간30분]
산정에서 구도시 두브로브니크 구도시 조망.
하얀 대리석이 깔려 있는 【플라차 거리】
프레스코 기법으로 장식되어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지진에도 끄떡없던 【스폰자궁】
플라차 거리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 【시계탑】
고딕, 르네상스 등 여러 양식이 혼합된 【렉터궁전】
구시가지로 들어갈 수 있는 【필레문】 등 관광
스플릿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 산책.
아침식사 후 두브로브니크로 이동 [ 약 3시간30분]
아래 사진들은 두브로브니크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한 모습.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국경 통과.
두브로부니크 도착 전 보스니와의 접경지역에서 차에서 내려 잠시 휴식.
위 사진에 보이는 지역은 보스니아 네움 지방이다. 보스니아는 이 네움지방 21Km만 바다와 접해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는 북부와 서부를 크로아티아가 감싸고 있으며
남부는 몬테네그로, 동부는 세르비아에 접해 있다.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시절 민족 통합을 목적으로 티토 대통령이 아드리아 해의 작은 항구 도시인
네움을 보스니아에 양도해 21km의 좁은 해안선이 바다와 접해 있어 내륙국과 다름 없는 상태이다.
보스니아 네움(Neum)은 바다에 닿아있는 유일한 해안 지대이다.
이 작은 바닷가 마을로 아드리아 해로 통하는 약 21km의 좁은 해안선을 확보하여 내륙국에서 벗어났다.
이 마을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 속하는 주인 헤르체고비나 네레트바 주에 속하며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네움으로 인해 크로아티아 본토와 끊어져 있는 월경지이다.
1718년에 체결된 파사로비츠 조약의 결과 달마티아의 거의 전역이 베네치아 공화국령이 되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보호국이었던 라구사 공화국(현재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당시에는 도시 국가 상태였음)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해, 네움은 양자 간의 완충 지대로서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다.
이때 확정된 국경선이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복잡한 분쟁을 거치면서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관광 산업과 교역은 이 지역의 경제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와의 월경 심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네움에는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네움의 관광 산업은 거의 바닷가에 집중되어 있다.
네움의 내륙 지방에는 풍부한 고고학적 역사및 때묻지 않은 자연 지대가 있으며, 개발이 기대되고 있다.
네움은 두브로브니크에서 60km 떨어져 있고,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80km) 모스타르 및 메주고레로부터 70km,
플로체 및 메트코비치로부터 30km 거리에 있다. 양 지역과는 모두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네움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유일의 바다와 마주한 곳이지만, 남쪽 지형은 반도와 각종 섬들로 차단되어 있고,
아드리아 해로 나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하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본토와는 험준한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이 곳에 국가 경제와 대외 무역의 창구가 될 만한 거대한 항구는 없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네움에서 30km 북쪽에 있는 크로아티아의 프로체 항을 크로아티아 정부와의 협약 아래
경제적 의미의 중추 항구로 사용하는 관리권이 있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네움지역을 통하지 않고, 크로아티아 본토와 두브르브니크를 잇는
펠리에샤츠 다리(총길이 2,374m)의 건설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정부로부터 승인받았다.
보스니아 네움 마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한 네움 지방. 넓은 영토에 비해 해안길이는 21Km에 불과하다.
보스니아 슈퍼에 들어가 쇼핑도 하고, 바다 건너 보이는 보스니아 땅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안내도에 보면 두브로브니크에 가기위해서는 보스니아 땅과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다시 크로아티아 으로.
휴식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국경 통과하여 두브로부니크로 향한다.
다리 건너 두브로부니크 도착.
드브로부니크 구시가지를 내려다 보기위해 작은차(셔틀)로 갈아타고 바위산을 오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전망을 보는 위치 면적이 좁아 덜 아름답게 보인다.
바위산에서 내려다 본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물빛도 아름다운 드브로부니크 아드리아 해안.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어: Dubrovnik, 이탈리아어: Ragusa 라구사, 라틴어: Ragusium)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남부의 아드리아해에 면한 역사적인 도시 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을 사이에 두고 이 지방과 크로아티아 본토는 단절되어 있는 월경지이다.
그러나 여행객은 간단한 여권 검사만으로 두 지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도시로, 두브로브니크 네레트바 주의 중심 항구도시 이다.
일찌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13세기부터 지중해 세계의 중심도시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5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파편과 총탄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곳은 폐허만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훼손되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었지만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두브로 부니크,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 중심지로 막강한 부(富)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의 군주 아래 있다가(1205~1358) 헝가리- 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도시가 요새화되고 2개의 항구가 세워진다.
아드리아해의 쪽빛 물빛과 붉은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구시가지를 둘러쌓고 있는 튼튼한 성벽.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함께한 동료들과.
케이블카를 이용했을 경우 시야에 걸리는게 많아 조망권이 덜 예쁘다.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전쟁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장 건물도 있다.
두브로 브니크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남부의 아드리아해에 접한 역사적인 도시로
일찌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13세기부터 지중해 세계의 중심도시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록.
1557년 지진으로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남아 있다.
1990년 유고 내전 때는 2000 여발의 포탄을 맞아 훼손되었으나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두브로브니크 항구.
산에서 내려와 성 안의 구시가지로 들어갈 수 있는 옹쪽 플로체 문으로 들어선다. 성문은 서문((Pile, 필레문)과 북문도 있다.
두므로브니크는 15~6세기에 무역 전성기였다.
엄격한 사회계급체계를 유지하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1416)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다.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 되었다.
성문 들어서니 건물 하나하나가 다 고픙 스럽다.
골목길 통과하여 작은 문을 들어서게 된다.
좁을 골목을 돌아 점심 먹으러.
TV 프로그램인'꽃보다 누나'에도 나왔다는... 성벽 좁은 공간을 이용한 수공예품 상점.
광장 건물 밖에서 점심식사.
산에서 내려와 점심 식사 후 두브로브니크 도심 관광나서기, 위 사진 윗쪽 빨간조끼 입은 이는 현지 가이드.
루자 광장(Trg Luža) 중앙에 국기게양대로 사용하는 올란도 기둥(Orlando's Column) 이 있다.
위 사진 위 우측은 스포자궁전, 아래 좌측은 중세의 전설적인 기사 올란도.
샤를마뉴 카를 대제가 조카로 삼은 인물로 스페인 정벌에 나섰다가 이슬람 군대에 전사하였다.
필레 문과 이어진 플라차 대로의 한쪽 끝에 자리한 광장이 바로 ‘루자 광장’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종탑, 렉터 궁전, 스폰자 궁전, 성 블라이세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35m 높이의 종탑을 지나면 플로체 문과 이어지고, 광장 중앙에는 ‘올란도 기둥’이 자리 잡고 있다.
올란도는 14세기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맞서 싸웠던 영웅으로
올란도의 팔뚝 길이인 51.1cm가 두브로브니크 길이의 단위인 1엘(ell, 두브로브니크 표준 단위)이기도 하다.
구시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 대부분은 이곳 루자 광장에서 열리며, 밤이 되면 거리 악사들의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올랑의 무용담은 프랑스의 영웅 서사시 '롤랑의 노래'가 15세기 두브르니크에 전해졌고,
롤랑의 독립과 자유정신이 높잉 평가되어 이곳에 기둥을 세웠다. 롤랑의 이태리식 표기가 올란도 이다.
지진에도 끄떡없던 스폰자(Sponza) 궁전.
1층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6개의 기둥과 회랑, 2층은 후기 고딕양식의 창문, 3층은 르네상스 양식 창운
2층 가운데는 크로아티아 국기, 3층 가운데는 두브로브니크 수호성인 성블라엣 조각상이 있다.
1667년 대지진에도 훼손되지않은 건물 이다.
궁전은 왕같은 로열패밀리가 사는 곳만을 뜻하지 않고, 예전엔 좀 크거나 화려해 보이는 건물을 '궁전'이라 불렀나 보다.
플라차거리(스트라둔거리) 동쪽에 위치한 스폰자궁은 상인으로 부터 무역관세를 걷으려는 용도로 1516년에 건축된 경제중심 건물이다.
처음엔 세관, 나중엔 조폐국이나 재무국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역사 자료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데
1000년 이상 된 문서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Spoonza Palace Historic Atchives)
특히 1991~92년 유고내전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기념관에서는 내전 당시의 모습은 담은 사진도 볼 수 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
성 블라이세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며 자유를 상징하는 대표 인물이다.
10세기 베니스의 야습으로부터 이 도시를 구한 아르메니아 출신 순교 성인 성 블라이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성당 이다.
위 사진 윗쪽 끝에 보이는 성당은 성모승천대성당.
12세기 십자군 원정에 나섰던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가 이 해안의 크룸섬에서 난파되었으나
살아나게 되자 신에게 감사드리며 7세기 지어진 비잔틴 성당을 모마네크 양식으로 개축했다고 한다.
성모승천 대성당은 티티아노의 '파란띠를 두른 성모'와 라파엘로의 '마돈나'로 유명하다.
위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구 시청 건물(City Hall and Marin Drzic's Theatre)은
스폰자궁전과 렉터궁전 사이에 있는 목합건물로 14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1816년 불에 탄 후 1882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 되었다.
지금은 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 일부는 시민들을 위해 카페와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얀 대리석이 깔려 있는 구시가지의 중앙로 플라차(Plaća) 거리는
일명 스트라둔 거리(Stadun, 라틴어에 '거리'를 뜻하는 단어 플라투(Plateau)에서 유래) 라고 한다.
렉터 궁전(Rector’s Palace)
1272년 처음 건축되었지만 1435년 화재로 인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1667년에는 대지진으로 파괴되면서 또 한 번의 재건을 통해 지금의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었다.
스폰자궁전 처럼 다양한 건축 양식의 모습이 보인다.
크네베브 궁전(Knežev dvor)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렉터 궁전(Rector’s Palac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렉터’는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궁전은 두브로브니크 시의 행정을 맡았던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이었고,
두브로브니크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궁전 정면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6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 안뜰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선장이자 자선 사업가로 알려진 ‘미호 프라차트’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산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38년에 동상을 세웠다.
안뜰에서는 여름 축제 때 클래식 공연이 열린다
플라차 거리의 옹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1444년에 건축된 높이 35m의 종탑(City Bel Tower of Dubrovnik).
종탑은 1667년 대지진으로 훼손되고, 그 후 1929년 현재 모습으로 건축 되었다.
벨타워 윗부분은 왕관모양으로 되어있고, 그 아래는 아치형 속에 그리니스 종이 있고,
종 양 옆에 2명의 남자가 망치를 들고 종 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위 사진에서는 서있는 위치가 바로 아래라 안보인다.
지금 있는 종은 복제품이고 원래 종은 스폰자궁 중앙에 전시되고 있다.
종탑은 편하게 시계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야경이 아름답다.
둥근 시계는 태양, 그 아래 달을 형상화, 아래 두 개의 네모 안에 로마숫자로 시간이 표시된다.
이탈리아 트레비 분수가 있는 스페인광장이라 불리는 곳,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 이곳 역시 '로마의 휴일' 영화 덕에 많이 알려진 곳이다.
스페인 광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17세기 때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 문 위에 놓여진 작은 화분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 나무.
카페가 있는 좁은 골목을 통과하면 계단 양 옆으로 또다른 골목이 이어진다.
크로아티아어로는 두브로니크, 이태리어로는 라구사, 위치는 위도 42도 39, 경도 18도04
19세기 이전 크로아티아 탄생 이전 두브로브니크를 수도로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것이 라구사 공화국 이었다.
라구사 공화국의 지도자를 영어로 렉터라 부르고, 렉터가 생활하는 곳이 렉텨 궁전(집무실) 이다.
절대 권력자인 렉터는 선출직, 정해진 기간(한 달)만 일하고, 한 번 선출되면 2년동안 피선거권이 없어진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앞.
위 사진 아래 좌측은 프란체스코 수도원 박물관 입구. 아래 우측은 성곽투어 티켓
성벽투어 티켓을 들고.
건물벽에 만들어 놓은 동물머리 위에 올라서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데 한 발 딛고 올라 서기가 매우 힘들다.
보기엔 올라설 것 같으나 살짝 경사가 있고, 너무 반질거려 미끄러워 올라 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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