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마을 라케스토에서 크로아티아의 수도『자그레브』로 이동 [ 약 2시간]
7일차 5월 15일(日)
오후 일정.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네오고딕 양식의 자그레브대성당 【성슈테판 성당】
화려한 칼라의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다운 【성 마르코 교회】, 【돌의 문】
예수회에 의해 17세기초 세워진 바로크양식의 교회 【성 카타리나 교회】
구시가지의 【반옐라치치 광장】
선택관광: 자그레브 트램 탑승 + 야경투어 (1인 €40)
플로트비체 국립공원, 라스토케를 떠나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로 이동 중.
자그레브(Zagreb-크로아티아어, 독일어: Agram)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다.
크로아티아의 북서쪽, 사바 강 변에 위치해 있고, 메드베드니차 산의 남쪽에 위치 한다.
주변 다른 유럽 국가와 기차, 버스로 쉽게 연결되고 특히나 서유럽과 동유럽을 통과하는 철로 중심에 있어
교통의 요지로 크로아티아 여행의 중심이 된다. 물론 교통뿐 아니라 도시 자체의 매력도 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나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혹독하게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구시가지를 보존하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자그레브에선 특히 그라데츠와 캅톨 언덕에 걸쳐 형성된 구시가지는 유럽 중세 도시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그레브는 19세기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1918년 10월 크로아티아 의회는 이곳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단절하고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달마치야를 독립 국가로 선포했다.
11월에 신생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세르비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와 연방국가를 형성했다.
1941년 4월 추축국 지배 하에서 크로아티아 괴뢰정부의 수도가 되었으나 1945년 5월 해방되었다.
크로아티아의 문화 중심지이며, 과학·예술 아카데미와 자그레브대학교(1669)가 있다.
여러 미술관에는 옛날과 근대 작품들이 모두 소장되어 있으며, 다양한 미술·극장·음악 아카데미들과 박물관들이 있다.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구릉 위 구시가지는 2개의 중세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치는 민간 마을로 13세기에 투르크인들을 막기 위해 성벽으로 마을을 둘러싸면서 그라데츠(요새)로 개칭되었으며,
카프톨은 성직자 마을로 16세기에 요새화되었다.
이 두 마을은 서로 경쟁했으나 19세기에 새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이 두 마을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광장과 공공건물들로 된 직선형의 신도시가 생기는 등 시가지가 사바 범람원까지 확장되면서 경쟁관계가 끝났다.
1860~1914년 급속히 성장했다. 20세기에는 동쪽과 서쪽으로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1945년 이후 사바 강 우안(남쪽)에 새 주거지역이 건설되었다.
메드베드니차 산 북쪽으로 삼림지대, 포도원, 아름다운 마을, 고대 성(城)들이 있는 자고례 지방이 있다.
근대 자그레브는 1093년 로마 가톨릭 주교관구가 되면서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1241~42년의 몽골 침략 후 그라데츠는 왕의 보호를 받는 자유도시가 되고 요새화되었는데 당시 탑들 가운데 여러 개가 현존한다.
투르크인들에게 항거하고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독일화 시도에 저항했던 크로아티아의 역사에 있어
자그레브는 정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크로아티아의 국가 재건 당시 범유고슬라비아 운동 및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1918년 10월 이곳에서 열린 크로아티아 의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모든 유대를 단절하고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달마치야를 하나의 독립 국가로 선포했다.
11월에 신생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세르비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와 연방국가를 형성했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크로아티아의 국민적 자치를 열망하는 세력과
세르비아의 중앙 집권화를 원하는 세력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계속되었고,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농민당의 도시지구 중심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 1941년 4월 추축국 지배하에서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괴뢰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는 1945년 5월 요시프 브로즈 티토 장군이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유격대에 의해 추축국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크로아티아 국가는 독일이 항복한 후 곧 붕괴되었다.
자그레브 도심에 들어서니 트렘이 보인다.
노란색 건물은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Croatian Nstional Theatre in Zagreb)
국립극장 역사는 1836년 시작하여 1860년에야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세프 1세의 도움으로 1895년 비엔나의 유명한 건축가인
페르디난드 펠네르와 헤르만 헬메르가 현재 위치에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화사한 노란빛의 건물은 신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어 매우 우아하고 장엄한 외관르 갖추었다.
1967~1968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크로아티아의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1995년 국립극장 건립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
지금까지 오페라와 발레가 공연되는 유럽의 이름난 공연장 이다.
위 사진 아래 우측 건물은 자그레브 예술 공예 박물관.
숲으로 둘러쌓인 호젓한 곳에 위치한 우리가 묵을 호텔 도착.
숙소는 어느곳을 가나 아늑하고 편안하다.
호텔에 짐 놔두고 다시 밖으로.
호텔에서 도심이 가까워 걸어서 다님.
플리트비체에서 송어구이 점심 먹고, 자그레브에 한국 음식점에서 이른 저녁식사. 김치찌게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맛과 다르다.
이른 저녁식사 후 도심 투어.
반 옐라치치광장으로 가는 길.
위 사진 아래 우측은 치즈가게.
대성당 첨탑이 높아 한 블럭 전에서도 보인다.
반 옐라치치 광장 옆에슨 치즈와 와인가게 등 여러 상점들이 많다.
광장 한쪽 구석에 청동으모 만든 도심 모형도.
이곳에서 지형 익히는 설명 듣고 이곳 저곳 둘러보다 일행 잃어도 정해진 시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니
카톨릭 신자는 미사 본다며 성당 부터 찾고, 어떤이는 쇼핑한다며 재래시장으로... 제각각 뿔뿔이...
자그레브시 문장.
자그레브 성모승천 대성당 또는 성모마리아 승천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Blrssed Virgin Mary).
라디체바(Radiceva) 거리와 만나는 끝에 있는 성 조지 기마상 (Saint George)
성 조지는 인간을 제물로 받는 무서운 용을 무찔러 평화를 돌려주고,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말발굽 아래 있는 형상은 인간을 제물로 받던 용의 모습.
위 사진 아래 수호성인인 성모마리아가 있는 '돌의 문'(Stone Gate).
돌의 문은 북쪽마을인 고르니 그라드를 둘러싼 성문 중 하나 이다.
자그레브는 중세시대에 외세의 침략을 막기위해 성벽을 쌓아 보호했고, 총 4개이 성문이 위치해 있었다.
1266년 건축한 성문을 몇 번의 화재를 겪었는데 1731년 지그레브 대화재로 모두 불타고,
1760년 돌의 문을 재건해 현재 남아있는 성문은 이 곳 하나뿐 이다.
다른성문들과 달리 이곳만 재건하게된 이유는 화재로 인해 성문이 모두 불탔지만
무명화가가 그린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의 그림만 불에 타지 않았다. 이 기적은 그림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이를 기념하여 성문의 아치 아래 성모마리아를 위한 예배당을 두었고, 그 안에 불에 타지않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림이 보존되어 있다.
자그레브시 1번지.
타일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다운 자그레브 성 마르코 성당(Crkva Sv. Marka)
그라데츠 지역의 중심에 있는 성 마르코 성당은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다.
성당은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타일 모자이크 지붕으로 유명한데, 갈색과 청색 그리고 흰색의 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 왼쪽에는 크로아티아의 문장, 오른쪽에는 수도 자그레브 문장이 새겨져 있다.
건물은 14~15세기에 걸쳐 건축이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고딕 양식이지만, 창문만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하다.
성당 내부에서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이반 에스트로비치의 조각 작품들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도 볼 수 있다.
지붕 문양이 예쁜 자그레브 성 마르코 성당 앞에서.
시계가 있는 탑 위 1871 숫자가 보인다.
위 사진 아래 성 캐서린 성당(St. Catherine's Church)
캐서린광장에 위치하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성당 이다.
14세기에 세워진 성 도미니크 성당이었다 1620년에 재건축, 1632년 완공하여 오늘에 이른다
성당 정면의 외부는 1880년 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목구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 되었다.
순백색의 외관처럼 성당 내부는 밝고 우아하며 화려하게 아름다운 수투코(Stucco) 장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17세기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성당 뒷편 전망댕서는 붉는 지붕으로가득한 자그레브 신와 우뚝솟은 대성당을 볼 수 있다.
북쪽마을 고르니 그라드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전경.
파란색 1량으로 된 차량은 1888년 설치한 것으로 자그레브 로우 타운과 업타운을 운행하던 푸니쿨라,
전차를 타면 1분 거리, 걸어서 5분이면 다닐 수 있는, 운행거리 66m인 세계에서 가장 짦은 거리를 운행하는 전차 이다.
자그레브 최초의 공공교통기관으로 경사로을 따라 움직인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운행 중,
로트르슈차크 탑(Lotrscak Tower)
자그레브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탑으로 13세기 북쪽마을인 고르니 그라드 남쪽 성문을 방어하던 탑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외형은 사면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로 모양이 다른 돌과 벽돌을 혼합하여 만들었고, 성벽 두께는 1.95m 이다.
탑에 있는 종은 매일 저녁 도시로 진입하는 문을 닫기 전에 울렀는데
종(Bell)을 도둑맞아 라틴어로 '도둑의 종'이라는 뜻인 '로트르슈차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9세기에 높이 19m의 4층으로 증축 되었고, 창문도 덧대었으며 맨 위에 대포를 들여놓아
1877년 1월 1일 시간을 알리는 의미로 정오에 발사하여 지금까지 매일 정오에 종 대신 대포를 발사한다.
대포발사는 자그레브의 역사적 전통을 알리는 행사로 기준시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사진에서는 길게 생긴 흰색 건물인 탑이 안보임)
차량 이름을 듣고 계단을 내려 딛으며 후니쿠니 후니클라 노래를 부르기도.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1866년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점령당시 총독이었던 반 옐라치치(Ban Jelacic) 백작 동상.
반 옐라치치 백작 동상은 정치적으로 여러번 위기를 맞아 1974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990년 국가를 대표하는 민족주의자로 인정받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그레브 대성당 앞 황금빛 성모상과 수호성인 조각상.(Virgin Mary with Angels)
자그레브 랜드마크인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
자그레브 성모승천 대성당 또는 성모마리아 승천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Blrssed Virgin Mary)이라고 한다.
이 대성당은 1094년 자그레브 교구가 처음 설립한 직후 건립되기 시작, 그러나 1880년 대지진으로 성당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를 보수하기 위해 재건축이 이루어졌을 때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네오고딕 양식이 더해졌다.
원래 첨탑 높이는 108m였는데 1880뇬 대지진으로 각각 104, 105m의 다른 높이라고 한다. ,
이직도 공사 중인데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고. ..
건물높이가 높아 성당 마당에서는 다 담기게 찍을 수가 없어 건너편 다른 건물 앞에서 간신히.
시간이 부족하여 내부를 둘러보지 못했다.
시가지 둘러본 후 약속 시간 맞춰 일행들 모두 만나 호텔로 이동.
즐거웠던 크로아티아 여행은 이곳에서 끝내고 내일은 오스트리아 그라츠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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