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寫眞

영월 곰봉(930m)

opal* 2018. 6. 12. 22:30

 

영월군에 위치하는 곰봉과 마대산은 마포천과 나란히 하는 김삿갓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우뚝 솟아 있다. 

 

영월에 있는 곰봉(930m)은 8년 전(2010.08.10) 첫산행한 적이 있는 산 이다.  

다녀온지가 오래되어 산행보다는 하산 후 계곡물에 몸 담그고 앉아 장갑 한쪽 떠내려간 일만 생각난다.

 

계절을 알려 주는듯 산뜻한 아침 햇살에 눈부신 초록과 줄장미가 시선을 끌고,  

고속도로 달리는 동안은 산줄기 위로 떠도는 구름이 시선을 머물게 한다. 

다른해 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로 구름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소나기라도 퍼부을듯한 기세다.

 

다른 때 같으면 차 안에서 TV 켜지 않고 산행들머리까지 푹 쉬며 다니지만, 오늘은 '세기의 담판'이 있는 날,

오전 9시 전부터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정상 회담으로 시선은 온통 TV 화면에 쏠린다.

 

깊은 산골로 산골로 향하는 곰봉행.

 

곰봉 향해 달리는 중 남한강 건너편 고씨동굴 입구가 보인다. 고씨 동굴(천연기념물 제219호)은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다리가 놓여지지 않아 강 양쪽으로 줄을 매어 배 타고 줄 잡아다니며 건넜다.  한 번은 여름에 갔다가

바람이 세게 불어 전날 비가 내려 불어난 황토색 강물에 풍랑이 일어 구입했던 입장권을 환불 받기도 했었다. 

 

 

 

 

김삿갓로 입구 위엔 구름인지 삿갓인지 특이한 아치형태 구조물이 인상깊다. 

 

조선민화박물관 입구  도착. 하차하여 단체인증부터 남긴 후 산행 시작.  

 

 

 

민화박물관 좌측 길건너 언덕 풀섶으로 들어서며 산행 시작.

 

걸음 빠른이들은 금방 숲으로 스며들고, 후미팀 뒤따르는 오르막에 발이 안떨어진다.

몇 발작 걷다 '도로 내려가 역산행 할까' 하고 기사님한테 전화해보니 차는 이미 출발하여 하차지점으로 가고 있단다.

 

'에이, 할 수 없다, 천천히 조금 더 오르다 힘들면 올라간 길로 되돌아 내려와 차도 따라 김삿갓 문학관으로 가면 되지뭐'

밟음밟음 오르다 보니 일행들은 얼만큼 내뺏는지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옆에 동행인이 있어도 오르막에선 서로 힘들어 거친 숨 몰아 쉬느라 그다지 할 말도 없다.

 

땀 뻘뻘 흘리며 고도를 높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녹음 속을 걸으니 볕이 뜨겁지 않아 좋다.

전에 왔을 땐 비가 내려 우비를 입고 산행,  숲에 구름이 끼어 답답했는데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가는데까지 가보자꾸나.'

 

전에 암릉구간이 좀 위험했는데 얼른 나타나질 않는다. 내 딴엔 열심히 오르느라 애썼건만 ...

거리가 먼게 아니라 내 걸음 속도가 그만큼 느려진 것이리라...

 

 

등산로에 돌이 많이 보이며 암릉이 시작된다.

 

보기엔 어렵지 않아 보이나 밧줄에 매듭이 없어 한쪽 손목엔 밧줄 한 바퀴 말아 쥐고 가방무게 더한 몸무게를 맡긴다.

 

밧줄잡고 바위 오르니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산에 다니며 느낀바지만 "고통 없는 멋진 공짜 구경은 없더라."

땀 흘린자에게만 보여주는 자연의 섭리.

 

오를수록 오르막 경사는 더 급해지고 돌도 더 거칠어지더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우측 아래는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 밧줄에 의지하는 팔힘을 잘 발휘해야 한다.  머리 부딪치지않게 그리고 조심 또 조심.

전에 여기 오를 때 앞에서 남자 회원들이 좀 도와줬으면 했던 생각이 난다.

 

바위 위로 오르니 건너편 마대산(馬垈山, 1052m, 2008.07.15 산행)이 나뭇가지 사이로 인사 한다.

 

우리가 차 타고 달려온 골짜기 조망. 

 

전에 여름산에서 보았던 꽃도 오랫만에 보니 이름 생각이 안난다.

방향에 따라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파란 하늘색이 구름으로 인해 더 예뻐 보인다.

 

파할 수 없는 암릉 구간이라 바위를 딛고 오르기도 하고, 바위 옆으로 오르고 나면 어김없이 다시 내려가게 만든다. 

 

바위가 많은 곳은 나무가 없어 그늘 혜택도 못받아 더 뜨겁다.  

 

 

또 밧줄잡고 오르기. 

 

밧줄잡고 오르느라 힘듦을 예쁜 하늘이 위로해 준다.

 

거대한 바위군 옆쪽으로 난 등로.

 

암릉지나 잠시 휴식하며 목 축이기, 얼려온 물이 아직 덜 녹아 생수를 더 붓는다.

처음 시작땐 조금만 오르다 도로 내려가야지 하고 올랐는데 암릉구간지나 예까지 오르고 나니 마음이 바뀐다.

'어짜피 혼자 오르고, 뒤로 가기도 힘들게 생겼으니 갈 때까지 가보자.'

 

계속되는 오르막.

 

비탈진 등로를 가로막고 쓰러진 고목은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넘다보니 나무 둘레가 굵어 그리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잔가지가 없으면 붙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더 넘기 힘들겠더라.  도와준 잔가지야 고마워.

다른 풀들이 자랄 수 없는 활엽수 그늘엔 그 틈을 노린듯 잎맥 무늬 예쁜 노루발풀이 작은 모습으로 뽑내고 있다.

색갈도 특이하고 넘 귀여워 한 컷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왕 매어놓을 밧줄이라면 사람 키에 맞춰 조금 높게 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완만해보이는 오르막이라고 밧줄 우숩게 볼 일 아니다. 등로에 쌓인 낙엽은 발목까지 빠지게 만든다.

밧줄은 길 안내 역할도 하지만 낙엽 속엔 크고 작은 돌들이 있어 더욱 필요하게 도움을 받는다.     

 

도대체 곰봉 정상은 어디에 꼭꼭 숨었길래 이리도 나타나질 않는걸까? 

 

오랫만에 참석한 ㄱ순씨 "오늘은 나물산행이나 할까 하고 참석 했다"는데 내 눈엔 이제서야 나물 한 두가지 보인다. 

단풍취, 우산나물, 나물도 때가 있어 지금은 여린 맛이 안느껴 진다. 연인산 갈 때만해도 단풍취 나물이 뜯을만 했는데...

 

암릉 지나 시원한 능선 오르니 산행 시작(11:00) 두 시간이 지났다.   개념도 꺼내 보니 맙소사~

정상에서 하산길은 올라온 길보다 거리가 훨씬 먼데 정상까지도 이제 2/3 정도 밖에 오르지 못했다니...

시간은 벌써 오후로 기울었는데 너무 힘들어 그런가 아직 밥생각도 없다. 

 

능선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밧줄 잡고 바위를 오른다.

 

능선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가 절경을 이룬다.

 

등산로 옆으로 보이는 적송도 멋지고, 바위와 합세하여 등산로 폭을 더이상 넓히지 못하게 는 만드는 노송도 멋지다,

 

바위틈 지나고

 

능선을 오르고 또 오르고

 

올려 딛었던 등로를 다시 내려딛고.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한 줌 햇살이 철쭉잎 색갈을 바꿔 놓고,  위로 향하는 길에 고목 하나가 또 등산로를 막고 누웠다.

산 관리 하시는 분이 전기톱날로 사람 드나들 수 있는, 등산로 넓이 만큼만 잘라 주면 좋겠단 생각 든다. 

 

나무에 가려져 잘 안보이는 커다란 입석이 위용을 들어낸다.

위치를 확인하려고 지도 꺼내보니 지도를 처음 펴봤던 능선에서 정상까지의 반 거리에 위치한다.

어쨌거나 조금만 더 가면 정상 될테니... 묵언수행이나 계속 해야겠다.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입석은 매끄럽지 않고 거칠다. 그런 표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들은 수분 섭취를 어떻게 할까?

 

다시 오르고 또 오르고.

 

마음은 빨리 정상에 오르고 싶지만 시장기도 느끼고, 다리도 쉬어줄 겸 탈수증 오기전에 물이라도 마셔둬야지.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정상석이 보인다.   산행시작 세 시간 소요.

해발 높이 930m,  혼자 올라와 그런가 힘도 들었지만 갈수록 무척 길게 느껴지는 시간 이다.

허기사 836m 높이인 북한산도 전에 두 시간 넘게 걸려 오르던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속도 느려진 요즘이니 그래도 준수하다고 생각해줘야 고생하는 두 다리도 좋아 하겠지?

'여보게 어쩌다 이렇게 느림보가 되어가는가.'

 

정상에서 보이는 앞 뒤 조망 담고, 주인 대신 가방으로 인증 한 컷.

 

올라오던 능선에서 좌측 뒷쪽에 있어, 곰봉에 가려져 안보이던 모습을 조금 크게 당긴 모습. 

위치상으론 어래산 쯤으로 보이는데 가보지 않은 산이라 확실치 않다.  

 

찍어달랠 사람 없어 셀카로 찰칵.

 

곰봉을 이젠 언제 또 올라올 수 있을지 몰라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찍어 눈에 담으며  "곰봉아 잘있어~~ "

 

골짜기 한참 아래 어디선가 일행들 목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빨리 가면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밥도 못먹고 그대로 내려 딛는다.

소리 크게 내어 부를까 하다 참았다. 잘 가고 있는 사람 세워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정상에서 멀지않은 곳에 탈출로가 보여 전에 이런 험한 골짜기로 내려간 것 같지 않아 조금 더 가다보면 길이 있겠지 하고

직선으로 표시지 깔아놓은 능선을 한참 가파르게 내리꽂으니 흐릿하게 보이는 길이 좌측으로 나 있다. 어럽쇼? 왼쪽으로 가면 안되는데?

 

 

'정상 지난 이 능선에서 좌측이면 전혀 다른 방향이라 절대 안된다. '

밥도 못먹고 모터 달고 달려온 내리막을 다시오르려니 이건 보통 힘 갖고 안된다.

'그래도 이 깊은 산 속에서 혼자 미아는 되지 말아야지...'

 

가파르게 떨어진 오르막을 다시 낑낑대고 올라오며  선두대장에세 전화하니 "표시지는 다 같이 식사 하기 위해 깔아놓은 것이고,

정상 조금 지나 내리막 오솔길 있으니 그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다른길과도 만나진다" 고 한 후 

"내려오는 길에 밧줄잡고 내려와야 하는 바위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아무리 바빠도 예쁜 모습은 그냥 못지나치는...

 

시간은 이미 정상에서 오후 2시가 되었고, 길도 없는 곳으로 알바하느라 시간이 또 흘렀다.  

오늘따라 시간을 참 자주 확인하는 걸 보면 지루하긴 한 모양이다.

정상까지 오르던 길보다 더 긴 하신길이라 공복 상태론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내리막 오솔길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 도시락을 펼쳤다.

 

머리 위에선 까마귀가 까악까악, 개미들은 같이 먹자며 쉴새없이 덤비기에 '그래 산에 사는 너희들도 같이 먹고 살자꾸나'

밥 한 술 떠서 물 부어 여기저기 흩뿌려주고, 까마귀 위해 과자 하나 꺼내 잘 보이는 곳에 놓아주고 하산을 서둘렀다.

 

 잠시 내려 딩으니 '아하,  선두 대장이 조심하라던 바위가 여기로구나. 그러고 보면 길은 제대로 잘 찾아온 셈이군.'

 

바위틈은 좁고 내려딛을 곳은 마땅치 않고. 

 

가을보다 낙엽이 더 많은 등산로는 길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렵다.

 

아래를 보면 삭막한 늦가을 같고, 위를 보면  녹음과 푸르름이 안정감을 준다. 

 

발은 낙엽속에 발목까지 빠지고, 낙엽 없는 내리막엔 마사토가 복병을 이룬다.

가파른 내리막에서 발 내딛는 순간 미끄러지면 엉덩방아 살짝, 배낭과 스틱 도움을 받는다. 

 

시험림인듯 나무에 파랗고 붉은칠 한 나무들이 군데 군데 보인다. 동글 동글한 철쭉잎은 숲에 디자인 한듯 예뻐 보인다.

 

오늘 산행 중 제일 넓은 쉼터를 만났다.

 

안내도에 '충분히 쉬며 수분과 열량을 보충하라"기에... 잠시 휴식과 간식.

 

 

 

한참을 더 내려딛다 한 번으로 부족한지 삭정이 밟아 또 한 번 미끄러지며 한 바퀴를 굴렀으나 다치진 않아 다행 이다.

 

곡골 삼거리

이정표에 1.3Km , 먼데선 계곡물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아래로 보이는 험한 산세를 봐서는 하산 지점이 아직 멀었다

 

곡골 삼거리 지나 능선 양쪽으로의 계곡은 아직도 깊어 한참을 더 내려가게 생겼는데 

어디쯤 오느냐며 전화가 오기에 "아직 1Km 정도 남았다"고 알려 주었다. 시간을 보니 하산 약속시간(16:00)가 다 되어간다.

 

오를 때도 오롯이 혼자, 하산 길도 혼자, 오늘 곰봉 산행은 완전히 나홀로 산행이 되다보니  바위 하나 만나며,

낙엽 속에 빠지며, 마사토 밟으며, 가파른 오르내리막 한 발 한 발 걸을 때 마다 각기 다른 생각들의 연속이다.  

 

커다란 바위가 노송 뿌리의 힘에 못이겨 갈라졌다. 죽은자는 산 자를 못이기나 보다.

 

바위옆으로 난 등산로를 내려딛느가 하면

 

다시 올라야하는 등산로.

 

거의 다 내려와 오늘 세 번째 엉덩방아. 다른때는 스틱과 배낭이 많이 도와줘 엉덩방아를 모면하곤 했는데

이번엔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고 스틱은 소나무 굵는 뿌리밑으로 파고 들었다. 가파른 하산길을 너무 서둘렀나?

 

나무 계단을 내려와 민가 도착하며 나홀로 산행이 끝난다.

 

난고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일행들은 하산주 시간 이다.

후미팀 일행들은 "올라갈 때부터 안보여서 도로 내려가신 줄 알았어요. 뒤에 오시는 줄 알았으면 정상에서 기다렸을 텐데."

"그러잖아도 마냥 기다리고 있을까봐 부르지 않았어요, 민폐 될까봐"

오늘 처음나온 여인 한 사람은 "혼자서 무섭지도 않으세요?"

"무섭긴요 뭐~ 길만 알면 그냥 다닐만 해요,"

 

오전 11:00 산행 시작하여 하산 약속 시간(16:000) 지난 16:30 도착.  산행 소요시간 5시간 반 걸렸다.
전에는 7~8시간 정도 걸어야 산행하는 맛 났는데 이젠 5시간이 지나면 힘이 든다.  

 

난고 김삿갓 문학관은 10년 전(2008.07.16) 마대산 산행 후 골고루 둘러본 적이 있다.

오늘은 꼴찌로 하산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하여 문학관을 여유있게 둘러볼 시간이 없어 생략.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병연은 오랜세월을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金笠)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김병연은 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1811년)이 일어나고,
선천방어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 투항함으로써 그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역적으로 전락되어 멸족을 우려한 부친이 형과 함께 그를 황해도 곡산으로 보내 노비 김성수의 집에서 숨어 살게 했다.
여덟 살 때 조부의 죄가 사면되어 고향 경기도 양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부친은 화병으로 죽었고. 모친은 패가망신한 집안이라고 멸시 받는 것이 싫어
자식들을 데리고 영월의 동강마을인 삼옥리에서 숨어 살게 된다.

 

김병연의 나이 20세 때 영월의 동헌에서 열린 과거(백일장)를 보게 된다.
어렸을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여 열 살 전후에 사서삼경 독파, 이십 삼세에 고을에서 보는 향시에서 장원급제했다
그 날 과제는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탄하라)였다.

 

조상의 내력을 모르는 김병연은 김익순을 통렬히 규탄한 문장으로 장원에 급제하게 된다.
김병연이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장원하였음을 알리는 자리에서
어머니로부터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듣게 된다.  

 어머니가 패가망신한 집안의 내력을 숨겨왔기 때문에 그는 비극적인 조상의 내력을 알지 못하고 자랐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시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다.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김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글로써 만천하에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자. 불효손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하늘을 머리에 이고는 살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방랑 초기에는 지방 토호나 사대부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나름대로의 품위를 유지하나 점점변방으로 밀려나고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 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일생을 보낸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풍자는 계급적 몰락에서 오는 개인적 좌절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의 시편들에는 사회로부터 받은 냉대와 멸시에 대한 분노.
빈부의 차가 심한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저주.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폭로하는 저항의식과 적개심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의 나이 54세가 되던 해에 전라도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쓰러졌다. 어느 선비가 자기집으로 데려가 반년 가까이 신세를 진다.
이후 지리산 등을 두루 살펴보고 3년 만에 그 선비의 집으로 돌아와 57세의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2년 뒤 아들 익균이 유해를 영월군 익풍면 태백산 기슭. 지금의 하동면 와석1리 노루목에 모셨다.

 

북미정상회담 결과가 궁금하여 오늘은 귀가 길에도 TV 켜고. 

 

혼자서도 아무 탈 없이 무사 산행한 곰봉 산행 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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