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두 달만에 다시 찾은 빛의 벙커

opal* 2019. 12. 18. 22:30


다녀온지 두 달도 안되어 또 나선 제주도를 하루에 다녀왔다.
열 번 이상 다녀온 제주도를 당일로 다녀오는 일은 이번이 세 번 째,
한라산 첫산행(2004.12.25) 후 7년만인 한라산 다섯번째 산행(2011.05.17), 그리고 8년 지난 오늘.  

산행 때는 산이 높아 아침 첫비행기와 저녁 마지막 비행기를 예약하고 다녔지만,   
이번엔 여유있는 시간에 왕복 예약하고, 교통편도 처음으로 노선버스 번호도 검색하여 꼼꼼히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2박 3일로 제주도 문화탐방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라산 등산이 아니면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아 그만둘까하다

지난번에 갔던 빛의 벙커는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편한 날 잡아 혼자 다녀올 생각으로 예약을 했다. 

며칠 전 동생에게 얘기하니 같이 가겠다고 하여 자리 알아보니 비행기 빈 좌석이 없어 대기 걸어놓고 기다리다

출발 전날 오후에 소식 받고 바로 결재, 그러나 아침 비행기는 다른 비행기를 타야해서 출발 시간이 다르다.

당일 아침, 동생은 08;40 출발이라 일찌감치 나서서 같이 갈 수 있을까해서 대기 걸으니, 이륙 20분 전 대기 수락,

그래봐야 09:00에서 08:40으로 고작 20분 이르다.


대기자로 기다리다 탔더니 맨 뒷좌석.  그래도 비싼가격 비행기라 음로수라도 준다.


일기에보도 괜찮고, 집 나설 때나 비행기에서 내다 볼땐 맑았는데 제주공항 도착하니 검은 구름이 온통 하늘을 덮어 잔뜩 흐렸다.

일출봉 갈 오후엔 제발 구름 걷히고 맑아졌으면... 

맨 뒷좌석이라 꼴찌로 내려 셔틀로 이동하여 공항 건물을 나선다. 당일 여행이라 짐 찾을 일도 없으니 편하다.


제주 공항 앞에서 반기는 키 큰 야자수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 인데도 이국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제주공항 1번 게이트 앞 1번 승강장엔 성산, 표선, 남원 행 급행버스가 정차 하는데 배차 간격이 보통 한시간 정도다. 

타야할 버스는 111번과 112번이 성산 방향으로 가는데 시간표 보니 111번은 방금 떠났고, 조금 기다려 112번 승차. 

수산 초등교 앞에서 하차 할 생각으로 정거장 수 적은 111번을 머릿속에 입력해두었는데 112번 타니 경유지가 조금 다르다.


두 달 전 달렸던 비자림로(1112번 도로)를 달리다 송당에서 1136번 도로로 바뀐다.


수산초등교 앞에서 하차하여 211번이나 212번 간선 버스로 환승하여 장만이 동산 앞에서 하차할 생각 했는데

급행버스 기사님이 고성까지 가서 돌아오는 버스 타는게 빠를 수도 있다며 얘개해 주신다.

수산 초등교 앞에는 일반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 여유가 많으면 버스 두어 정거장 정도 걸어가면

빛의 벙커에서 운행하는 셔틀 버스 타는 제2주차장 까지 걸어도 되긴 한다. 

그러나 빛의 벙커만 가는게 이니고 성산일출봉까지 다녀올 일정이라 시작부터 시간을 헛되이 쓸 수가 없다.  


고성리(성산 환승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반대로 오는 버스 승차.

고성리 정류장은 빛의 벙커 관람 끝내고 다시 성산일출봉 입구 가려면 또 지나가야 한다. 


장만이동산에서 내려 점심부터 먹을까하여 음식점으로 가니 가는 날이 장날, "금일은 쉽니다."


차에서 내린 큰길에서 걸어 좌회전 세번만 하면 되는 것으로 머릿속에 입력해 두긴 했지만 그래도 못믿어 휴대폰 꺼내 현위치 확인, 

 

좁은 길 잘 찾아 커피박물관 이정표 보고 좌회전으로 들어섰더니 귤밭의 귤들이 반갑다고 손짓한다.  


귤 사진 찍고 다시 걸으니 작은 버스가 들어오며 기사님이 묻는다.

"빛의 벙커 가시나요?"

"네"

"그럼 이 버스 타세요."

"셔틀 인가요?"

"네"

"차 앞에 표시가 없어 못알아봤어요."



셔틀 버스에 올라타고  빛의 벙커 정문앞까지 이동.


55일 만에 빛의 벙커 앞에 다시 섰다. 

 지난번 왔다가며 다시 오고 싶은 속내를 보였더니...  조그만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지난번엔 첫 회로 구스타프 클림트, 훈데르트 바서, 에곤 쉴레 등 여러 예술인들의 작품을 감상했고,

이번엔 두 번째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그림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다시온 기념으로 인증 한 컷 남기고.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음식점 갔다가 헛탕치고 와 커피 박물관에서 치즈케잌과 커피로 점심 나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델란드). 
 엄격한 목사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친척이 운영하는 화랑에서 중개상인으로 일하다 미술 세계에 입문 했다. 
한때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가족이 반대하는 연애 사건에 몇 번 휘말리며 불화를 겪다
벨기에, 파리, 또 아를과 생레미, 오베르쉬르우아즈 등 프랑스 시골 마을을 전전하며 화가 생활을 이어갔다.
집착과 광기가 가득한 열정을 불태울 유일한 대상이었던 그림은 때로 그를 일어서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급진적이고 고집불통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대중의 몰이해, 경제적 궁핍, 자신감 상실 등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그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들기도 했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프랑스)은 취미로 그림을 배우다 전업 화가가 된 인물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외가인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증권사의 직원으로 일했고,
덴마크 출신의 아내를 맞아 아이를 다섯 둔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았다.
그러나 1883년 재정 위기로 실직한 뒤 본격적인 화가의 삶을 결심한다.
이를 탐탁지 않아 하던 아내가 자신의 고국으로 떠나버린 뒤 그는 브르타뉴의 퐁타방 지방에 한동안 머물며
동료들과 함께 예술가 마을을 이루고 작업에 전념하기도 했으며, 이후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 섬,
그리고 고흐가 머물던 아를 등을 거쳐 남태평양의 타히티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1895년의 두 번째 타히티 방문은 파리에서의 생활 혹은 문명인으로서의 생활을 완전히 접은 뒤의 정식 이주로, 죽는 날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빛의 벙커 안에 들어서니 고흐의 그림이 흐르고 있다. 



황홀한 순간을 담는 중 몰카에 포착.



입구에 서서 인증도 남기고.


셀카 남기는 이들도 자누 눈에 띈다.





거울에 비쳐진 본인.


실내에 들어서면 사방 벽면과 천정과 바닥까지 화폭인 그림 속에 동화되어 그림 속 인물로 몰입된다.   



벙커 내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면 더 입체적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40분을 넘게 서서 움직여야 한다.  


아몬드꽃 그림 앞에 서니 2년 전인가 딸과 손녀들이 개기일식 보러 미국 갔다가 일식 장면을 아몬드 과수원에서 보았다던 생각이 난다.

 아몬드 꽃이 흰색인걸 전에 빈센트 반 고흐 영화를 보고 알았다.


고흐 그림이 사라지고 바로 이어서 자막이 흐른 후 고갱의 그림이 펼쳐진다.



화가가 바뀌는 순간.


1886년, 고갱은 파리에서 고흐 동생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 형제를 만나게 된다.
고흐의 경제적, 정신적 지주였던 동생 테오는 당시 몽마르트르의 부소와 발라동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고흐는 고갱이 퐁타방에서 그린 색다른 경향의 그림에 매료되었고, 테오 역시 고갱의 작품 다수를 위탁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각기 다른 지방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고갱과 고흐는 화상인인 동생 테오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접하였다. 
평소 고갱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고흐는  고갱의 건강과 경제적 상황이 악화될 무렵  자신이 머물고 있는 프랑스 남부 아를로 초대한다.

 이미 고흐의 특이한 성격을 잘 알고 있던 고갱은 그 제안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경제적 압박과 테오의 간청으로 1888년 10월에 아를로 내려가 그해 12월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약 90일 간 함께 지낸다. 


자신의 격정적인 감성을 두터운 물감으로 끊어 바르듯 그리는 고흐에 비해

고갱은 퐁타방에서 새로 개척한 방식대로 짙은 윤곽선에 고른 붓질로 평평한 색면을 펼쳐 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고갱은 고흐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 생각했고, 자신은 그보다는 원시적인 것에 더 끌린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로서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가졌던 두 예술가의 대면은 각자가 가진 그림 스타일에 대한 견해차가 점점 커진다. 

고갱이 그려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는 고흐와 다른 스타일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인 동시에

두 사람 간의 미묘한 긴장감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둘의 그림은 기법 면에서 서로 달라 그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둘의 다툼은 격렬해져 고갱은 아를을 떠나고,  화가 난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 창녀에게 줘버리는 소동까지 벌인다.

1890년 37세 젊은 나이에 고흐는 우울증으로 자살하며 생을 마친다.



▼. 아래는 벽면에 비쳐진 폴 고갱 그림을 직접 찍어 동영상으로 만든 것. 



편한 자세로 보기위해 등산용 간이의자를 준비해 갔다.  깊숙한 한 곳에 자리 잡고 벽면에 기대어 감상과 촬영을 동시에. 

그림이 많으니 상영시간도 길다, 그에 비례하는 셧터횟수,  한 시간이면 두 화가 그림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림이 많아 대충 찍었다.   


▼. 아래 영상 역시 빈센트 반 고흐의 영상사진을 직접 찍어 만든 동영상.



▼. 아래 9컷은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동영상.







고흐 그림 영상에 배경음악은 솔베지 송, 욕심이 생겨 좀 길게 담았더니

이곳 블로그에선 거부,  길게 녹화된 몇 컷은 올릴 수 없어 유감, 좀 아쉽다.   












▲. 위 화면 까지는 동영상.


▼. 화가들의 작품이 워낙 많다보니 영상에 안담긴 사진도 있다 했더니 서서 왔다갔다 하며 감상한 동생이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벙커 안, 아무데나 앉거나 서거나 돌아다니거나 본인 마음 내키는 대로 보면 된다.


폴 고갱과 반 고흐 영상 끝난 후 밖으로 나서기 전.



돈 맥클린의 'Vincen(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에)' 노래가 생각나는 그림 앞에서.

t https://www.youtube.com/watch?v=Q93OVxxqaA0

 ←클릭하면 음악 재생.



빛의 벙커 도착한지 점심 식사 포함 약 두 시간 정도의 시간 보내고 빛의 벙커를 떠난다. 

이번 작품은 내년 시월 하순(2020.10.25)까지 상영된다.    


그림과 음악으로 기분 좋은 힐링하고, 다시 성산 일출봉으로 향한다.

그림 보는 동안은 느긋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마음이 또 바빠진다.

당일 비행시간이 마지막 비행기가 아닌데다 제주에서의 노선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 압박감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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