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설악산 백운동 계곡.(1)

opal* 2005. 7. 12. 19:13

 

 05:30. 동쪽을 향해 출발하니 어제까지 내린 비로 수면이 높아진 한강 위로 잠깐 동안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시다.

낮엔 비록 더울망정 장마 중에 보는 아침 햇살이라 더 반갑다.

팔당대교를 건너 두물머리를 지나도록 물과 함께 달리는 아름다운 길이, 엷게 드리워진 새벽안개로 더 환상적이다.

 

07:30. 홍천 휴게소에서 20분간의 휴식.

09:20. 한계령 도착. 생리작용만 해소 시킨 후 다시 차에 올라 바로 U턴하여 되돌아 가다 잠시 정지.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차에서 내려 입을 다문 채 산속으로 스며든다. 이곳이 이름하여 ‘도둑 바윗골’.

골짜기 이름 그대로 도둑질이라도 하듯 잽싸게 소리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들 기어오른다. 마치 무슨 작전이라도 펼친 듯이.

 

빗물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산죽나무 사이를 한동안 헤치며 오르고, 두 사람 정도가 안아야 될 만큼의

아름드리 통나무가 나이를 먹어 제 스스로를 못 이기고 누워있는 아래로 허리 구부려 인사하며 통과한다.

 어제까지 내린 빗물이 보태져 시냇물을 이룬 돌멩이 골짜기가 곧 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제대로 닿지를 않아 살아있는 나무나, 죽어 자빠진 나무나 원시림으로 얽히고 설켜 

이끼 낀 나무들 사이로 허겁지겁 치고 오르니 쏟아지는 폭포소리와 바위의 모습들이 장관을 이루는데

폭포의 모습은 나무에 가려 제대로 보이질 않아 귀로만 듣는다.

      

 10:10. 이름 모르는 예쁜 분홍색 야생화가 있어,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후미대장님께 살짝 미소를 보내고 한 컷, 

여름 방학 중에나 보던 주황색의 동자 꽃도 어느새 무리지어 피어 반겨준다.

       

10:30. 올라설 만큼 올라왔나? 이젠 물소리가 안 들린다. 오늘의 산행은 봉우리 정상이 아니고 능선이 제일 높은 곳, 

 아직 더 올라야 될 것 같은데... 요즘은 높은 곳을 주로 다녀 그런가? 시간으로 짐작이 간다.

        

10:40. 긴 줄에 매달린 ‘출입금지’ 팻말 옆으로 올라서니 서북능선길이다. 왼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서면 귀떼기청 봉이고,

오른쪽으로 계속가면 대청봉이 된다. 먼저 오신 분들이 모두를 기다려주고 있다. 길이 험난하고 개방된 곳이 아니라서

따로따로 다니다 길을 잃으면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는 곳이라서 단단히 팀웍을발휘해야 하는 날이다.

산행 중엔 다 같이 모이기도 힘이 드니 이김에 단체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주로 뒤쪽에서 다니던 사람들은 함께 모여 간다니 좋아 입이 벌어진다. 그만큼 힘든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산행시작 한 시간 이십분 만에 하산. 이렇게 빨리? 양쪽 능선을 버리고 길 없음, 전방 낭떠러지’. ‘등산로 아님’.

팻말을 보며 내려서는데 리더보다 늘 앞에 다니던 몇 사람은 오늘도 여전히 안 보인다.

그렇게 따로 다니다 겨울 눈보라 속에서 한번 다른 곳으로 하산해 애먹은 적도 있건만.

       

내려서는 잡목 숲엔 오래 묵어 줄기가 굵은 둥굴레 잎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다른 식물들은 모두 시퍼렇게 한창 싱싱하여

향긋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데, 5분쯤 내려서니 옆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인데도.


11:05. 원시림 같은 숲속에서 앞 사람만 따라 골짜기로 내려서는데 뒤에서 부른다. 안내표시가 옆으로 나있다고. 

5분쯤 지나 또 다른 곳에서 흐르는 물을 앞사람이 마시기에 한 모금 마셔보니 냉장고에서 꺼낸 물보다 더 차고 맛이 좋다.

한 컵을 더 떠서 매어 달았다.

       

11:20. 거짓말 좀 보태 운동장 만큼이나 넓고 비탈진 암반위로 물이 흐르니 모두들물이끼에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내려 딛는데 신발창보다 스틱이 더 먼저 미끄러진다. 내려가며 바위가 좁아지고 고도가 낮아지면 금방 폭포로 변하고

다시 넓은 암반위에선 흐르는 듯 마는 듯 흘러내린다. 암반에서 걷다 숲속 길로 들어섰는데 돌멩이에 무릎을 또 부딪친다.

차에서 내려 바로 올라설 때 모난 돌에 세게 부딪친 정강이가 아직도 아프다. 

       

11:50. 이름은 자세히 모르나 내가 볼 때는 생긴 그대로 이단폭포다. 방태산의 이단폭포나 오대산의 구룡폭포처럼 직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남성적이라면 암반 자체가 아주 리드미컬하고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다시 또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모습은 여성적인 폭포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커다란 암반덩이가 한 번도 끊김없이 이어지는 게 신기하다. 곡백운의 숨은 비경이 여기에 또 하나있으니 계곡 따라 가던 시선이멈춰지는 곳에 몇 개의 바위봉우리가 압권이다.  용아장성 능선이란다.

       

폭포 아래에 모여 사진도 찍고 다시 가파른 산으로 치며 올라서는데 앞서가던 이들이 길이 없다며 도로 내려선다.

리더보다 앞서가던 이들은 귀떼기청봉까지 갔다 와서 또 안보이니 리더의 얼굴색이 변하며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오늘같이 코스가 불분명한 곳에선 같이 다녔으면 좋으련만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으니...  

       

암반 따라 좀 더 내려서다 다시 산기슭으로 올라 잠시 걷다보니 금방 낭떠러지 직벽, 폭포 옆으로 폭포 길이만큼 내려서야 하는 곳, 아차 하다간 폭포 물과 함께 떨어지게 생겼다. 발밑의 바위는 물이 있어 미끄럽고 좁다. 리더보다 앞서 간 이들은 작은 점이되어 폭포아래 저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다.

       

굵지도 않은 가느다란 줄을 나무에 매어놓은 것을 서너 명이 잡아당기며 폭포를 등지고 반대로 서서 한사람씩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내려설 수 있도록 기지를 발휘한다. 119구조대원을 방불케 한다. 한 사람씩 천천히 보내야하니

이 곳 백운폭포 위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로서로 돕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 오늘의 산행이 더 돋보인다.

산행은 경주가 아닌 것을.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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