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19회(2구간,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

opal* 2005. 9. 24. 13:25

 

오늘은 지리산 2구간을 걷는 날, 집을 나서니 음력 스무하루 반달은 낮은 조각구름 사이로 들락거리고, 

가시오페좌가 또렷이 보이는걸 보면 가시거리가 좋겠다. 몸의 컨디션도 굿이다.

 05:30. 출발. 달리는 차 안에서 졸다 깨니 전형적인 가을 날씨. 08:20. 인삼랜드 휴게소 도착. 따뜻한 미역국과 밥 한술씩 먹는다.

 

10:40. 성삼재(1070m) 도착. 그동안 다니던 것처럼 북쪽방향 한 방향으로 가려면 화개재에 올라 성삼재로 가야겠지만 

화개재까지 걸어 올라서야 하는 서너 시간이 아깝고 힘이 들어, 차로 오를 수 있는 성삼재부터 역으로 진행 한다.

 지난번에 화개재에서 바라보던 반야봉이 대간 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바라만 보녀 아쉬워 했기에

오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욕심을 부려 반야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와 보리라 단단히 다짐한다.

 

11:30. 노고단 대피소를 거쳐 10분 만에 단숨에 석탑까지 오른다.(1507m.)

노고단의 철문은 전에 왔을 때처럼 휴식년제로 여전히 굳게 닫혀 있어 좌측 아래로 내려서서 나무사이의 물에 젖은 돌길

 바라보며 부지런히 걷는다. 진보라 빛 투구꽃이 반겨주나 시간 걸릴까봐 못 찍는다.

 

12:00. 검은 바위를 지나고 두 번째의 헬기장도 지나고, 오늘은 뱁새가 되어 황새 따라 나른다. 가랑이가 찢어지거나 말거나.

 12:10. 노고단에서 2.7km 떨어진 피아골 삼거리. 반야봉까지 같이 가보겠다며 일행 중 남녀 두 분이 내 뒤를 따라 붙는다.

 12:20. 임걸령(1320m) 도착. 넓은 터에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바로 아래에서 힘차게 쏟아지는 샘물을 한 컵 받아 마시고, 

가파른 오르막에 한 시간 반을 내어 달렸더니 이젠 속도를 못 내겠다. 으이 쌰, 으이 쌰. 돌을 잡고 네발로 기어 오르며 내는 소리다.

 

 2:45. 노루목 도착. 단체 생활에서 이탈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행한다. 반야봉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삼도봉으로 가는 대간 길을 잠깐 버리고 좌측으로 들어서서 오른다. 통나무 받침 계단에서 두 손을 한쪽 무릎에 번갈아

얹어가며 오른다. 싱그러운 숲의 가파른 좁은 오솔길. 너무 여유 없이 오르는 것 같아 나무사이로 빠꼼히 보이는 곳에서

잠깐 전경을 찍는다. 지난 구간 때부터 벼르다 오르는데 구름만 보다 가는 건 아닐까? 구름이 모여 왔다 날아가기를 반복한다.

 

13:00. 멋진 바위가 옆으로 나와있어 위에 올라 반야봉을 바라보니 반은 구름에 가려져 있어 다시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서서 빽빽한 구상나무 숲길을 오른다.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가파른 돌길과 빨간 철계단을 오르고,

다시 바위 길을 르는데 구름에 가려졌던 봉우리들이 금방 구름 옷을 벗고 따가운 가을볕을 쬐고 있다.

13:20. 초반의 초고속이 가파른 오르막에선 속도가 완행으로 바뀌어 진다.

 

13:25. 지리산에서 두 번재 높은 반야봉(주봉1751m) 도착.  와- 해냈다. 올라섰다. 만세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차로 올라온 도로와 성삼재와 우리가 올라섰던 노고단이 모두 보인다. 뒤따라 온 일행, 앞으로 멀리 구름에 가려져

높은 꼭대기만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이냐 묻는다. 너무 높게 보여 처음엔 나도 잠시 착각 했으나 천왕봉은 동쪽 멀리 있고

구름으로 보이지 않는다. 봉우리 마다의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들이 면화꽃 열매에서 터져 나오는 목화솜처럼 하얗다. 

목적을 달성했다는 만족감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14:00. 반야봉을 내려딛는 길도 이젠 빠른 속도로 내려가야 되겠지? 20분쯤 내려선 갈림길에서 화개재쪽으로 향한다.

14:25. 노루목에서 직접 오는 삼거리 길에서 일행을 만나 황새 4마리 사이에 끼어 나른다.

14:30. 삼도봉(1550m) 도착. 노루목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1km이니, 대간 종주의 1km는 못걸은 셈이다.

삼각뿔 모양의 짧은 쇠붙이에 경남과 전북, 전남 도명을 새겨 바위 위에 세워 놓았다. 

 

14:45. 몇 층 높이의 긴 나무계단을 잰 걸음으로 한참 만에 내려선다. 반대에서 왔더라면 얼마나 힘들게 올라섰을까?

14:50. 지난번 뱀사골로 내려딛던 화개재 도착. 지난번 하산 땐 30분 걸리던 토끼봉이 반대로 오르려니 왜 이리 먼 것인지...

 내리막에선 날고, 평지에선 뛰고, 오르막에선 네발로 기어오른다. 오늘의 산행은 몸에 득도 안 되는 무모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기록 갱신을 위한 모험도 아니요, 전지훈련을 나온 것도 아닌데 다리에 무리함만을 가하는,

경쟁자도 없는 경기를 혼자서 펼치고 있다.

 

15:25. 토끼봉(1534m)의 표지목 앞 도착. 봉우리마다 기념 남기다 지난번에 못 찍은 기념사진을 오늘 찍으니 

다리는 자에겐 기회가 오게 되어있나 보다. 표지목 바로 위 헬기장 같은 토끼봉에서 후미대장과 서너 명이 기다려 준다.

대간 길은 지난번에 내려딛던 화개재에서 작별인사 나누어야 하지만 뱀사골 계곡을 딛었기에 오늘은 칠불사를 향해 하산 한다.

 

잠깐 쉬어 목축이고, 개방되지 않은(금지구역) 하산 길을 맨 앞장서서 걸음아 나살려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는다.

반야봉을 안 오르고 그냥 지나온 일행들보다 늦게 도착하면 안되겠기에.  

 오랫동안의 휴식년제로 개방되지 않은 길이라 원시림 그 자체이다. 이정표도 없고 길은 좁은데다 내 키 보다 큰

산죽나무가 맘껏 자라 길이 안보여 발을 빨리 빨리 내딛기가 불편하다. 돌에는 이끼가 끼어 미끄럽고

맨 앞장서서 가자니 얼굴에 거미줄이 자꾸 걸린다. 

 

16:00. 얼마나 내달렸을까? 한 동안을 내려서니 후미 팀으로 앞서 가던 일행이 어두운 숲 속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다.

16:15. 가파른 내리막의 빠른 걸음은 제동이 안 걸린다.  무릎이 아프다.

아침 차 안에서도 내리막의 다리는 몸무게의 7배 하중을 느낀다고 얘기 했거늘... 

줄과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칠불사 울타리를 지나 너덜지대의 이끼 낀 바위에서 몇 번을 미끄러질뻔 했다.

 

16:30. 선두팀 일행들이 저 만치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휴~ 이젠 안심이다. 천천히 가도 되겠다. 

포도 몇 알로 목을 축인다. 한 시간 이상의 계속되는 가파른 내리막 길에 젖은 낙엽과, 이끼 낀 바위와,

젖은 나무 뿌리들이 밟혀 미끄러지며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찧는데 등에 있는 가방이 도와준다. 무릎이 점점 아파온다.

  

16:50. 계곡물을 만나니 손을 씻고 싶은데  미끄러질 때 부딪쳐 살짝 상처난 손바닥이 아플까봐  장갑을 못 벗는다.

동행인이 스틱을 빌려줘 짚고 내려섰다.

      17:20. 토끼봉부터 하산 길만 두 시간에 걸쳐 범왕리 아스팔트 길 도착. 계곡 길로 하산 하느라 칠불사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덤으로 오른 반야봉 산행이 너무 너무 기분 좋고 뿌듯하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6시간 40분

 

2005. 9. 24.(土) 백두 대간 2구간(지리산)을 종주하다.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토끼봉-칠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