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446

5월의 신록(천상병), 5월의 어느 날(목필균), 오월의 찬가(오순화), 네가 알 것만 같아(나태주)

춥지도 덥지도 않아 활동하기 딱 좋은 계절, 그러나 코로나19로 오래도록 움츠러들은 마음은 쉽게 펴질 줄 모른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1930-1993)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맞으니 피가로의 결혼(모짜르트) 3막('저녁 바람은 부드럽게') 에 나오는 음익이 생각난다. 수산나와 백작부인이 편지를 쓰며 2중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영화 '쇼쌩크 탈출' OST로도 사용 되었다. 5월의 어느 날 목필균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 꽃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는데 오월 익어..

詩와 글 2021.05.10

신록 예찬(新綠禮讚)

어제 오후만 해도 백신 접종한 왼쪽 팔이 뻐근하며 묵직하더니 오늘은 한결 가볍다. 이대로 아무일 없기를 ... 오후에 녹색 세상 산책 하기. 신록예찬(新綠禮讚) 이양하(李敭河) 수필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

詩와 글 2021.05.05

피천득 수필, 5월

계절의 여왕 5월 청량감 느껴지는 신록 사이로 적당히 비춰주는 따사로운 햇살, 싱그럽고 맑은 공기, 시원한 산들 바람, 어느것 한 가지도 공짜 아닌게 없으니 그래서 더 좋아하는 걸까? 어제는 계양산에서, 오늘은 개화산에서 보약 한 사발 마시며 힐링 중. 피천득님의 수필 '오월'은 전에도 올린적(2008.5.1)이 있다. (우측 카데고리 詩와글')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립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

詩와 글 2021.05.02

겨울나무(장석주), 잔설(신석정)

술레잡기하기 위해 일찌감치 먼저 나왔던 잎이 꽁꽁얼어 상처를 입고 나뭇잎 속에 숨어 무서운 한파를 이겨내고 있다. 아침에 살짝 내린 눈 양지엔 다 녹고 음지에만 남아 있다. 겨울나무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흠 없는 혼 하나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장석주 시선집 '꿈에 씻긴 눈썹' 중에서 잔설(殘雪) 신석정 ​남풍에 묻어오는 엊그제 입김에도 동백꽃 내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군자란도 뾰조롬히 꽃대를 올려놓고 ​호랑가시 빨간 열맬 쪼아먹던 산새 ​문득 열어보는 창문소리에 놀래 날고 잔설(殘雪) 부신 설악을 쪽빛 하늘이 넘어가고 있었다 ​신석정辛夕汀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

詩와 글 2021.01.30

겨울나무(정연복)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달밤에 체조. 겨울나무 3 정 연복 살아가다가 어쩌다가 한 번쯤은 겨울 나무 같이 몽땅 비울 줄 알아야 하리 겉모양으로만 비우는 체 할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화끈하게 비울 때가 있어야 하리 아낌 없이 남김 없이 비워버린 후 지금껏 몰랐던 새 것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해야 하리 겨울나무 4 정연복 베란다 너머로 하루에도 몇 번은 눈에 띄는 겨울 나무 빈 가지의 벌거숭이로 죽은 듯 고요히 서 있다. 지금은 한겨울 숨 죽인 기다림의 시간이지만 이윽고 새봄 오면 연푸른 잎들 되살아오리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지만 겨울 나무 속에서는 이 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

詩와 글 2021.01.24

박노해 - 굽이 돌아 가는 길, 길, 동그란 길로 가다

굽이 돌아 가는 길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길 박노해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

詩와 글 2021.01.16

함민복 - 가을하늘, 꽃, 눈물은 왜 짠가, 서울역 그 식당,

가을하늘 /함민복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네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도 없다네 지지리 못나게 살아온 세월로도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없다네 어머니 가슴 저리 깊고 푸르러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1996) 꽃 / 함민복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詩와 글 2020.09.10